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문단 편집) == 소개 ==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Drusus Julius Caesar)는 [[로마 제국]]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황족, 제위계승권자, 정치인, 행정가이자 로마 제국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친아들이다. 보통 친삼촌이자 장인인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대(大) 드루수스]]와 구분하기 위해서 '''소(小) 드루수스'''라고 불리며, 조카인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드루수스 카이사르)와 구분하기 위해 '''드루수스 2세'''라고도 통칭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의 상속자인 그는 AD 19년 시리아 속주 [[안티오키아]]에서 급사한 황태자 [[게르마니쿠스]] 사후 그 뒤를 이어 황태자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황실의 한축인 클라우디우스 가의 피,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의 피를 이어받았으며, 원래는 클라우디우스 네로 가의 장손이었다. 그는 입양형제이자 사촌형인 [[게르마니쿠스]]와 달리 태생적으로 부모 양쪽 모두에게 [[아우구스투스]] 일가의 피가 흐르지 않았다.[* 소(小) 드루수스의 사촌인 게르마니쿠스와 클라우디우스의 경우, 어머니 소(小) 안토니아를 통해 아우구스투스의 피를 이어받았으나, 아그리파의 딸 빕사나아와 티베리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소(小) 드루수스는 혈연상 아우구스투스와는 남이었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는 드루수스를 그의 사촌여동생이자 게르마니쿠스, [[클라우디우스]]의 여자형제인 리빌라와 결혼시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양가 모두와 인연을 맺도록 했다.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제3대 황제인 [[칼리굴라]]의 양숙부이자 5촌 당숙이며 고모부이다. 또한 제4대 황제인 [[클라우디우스]]의 사촌형이자 매형이다. 황후 [[리비아 드루실라]]의 친손자로 출생 당시에는 친삼촌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 사촌형 게르마니쿠스와 이름이 거의 똑같은 이름인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Nero Claudius Drusus)였다. 그러다가 아버지 티베리우스가 양할아버지 [[아우구스투스]]의 공식적인 양자로 입적된 AD 4년, 그 역시 아우구스투스의 양손자로 입적돼 오늘날 잘 알려진 이름인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개명했다. 드루수스는 AD 10년에 재무관을 시작으로 공직 경험을 시작했다. 이때 그는 게르마니쿠스의 정치적 경력을 그대로 뒤따랐는데,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두 사람을 신화 속 등장인물이자 [[쌍둥이자리]]의 주인공인 [[디오스쿠로이]] 형제[* [[카스토르]]와 [[폴룩스]].]에 비유하면서 이들을 지지했다고 한다. 드루수스는 인기가 없던 아버지 티베리우스와 달리 로마인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역량이 뛰어난 후계자였다. 그는 일찍부터 [[세야누스]]의 야심을 눈치채고 그와 대립했는데 AD 23년 9월 14일 갑작스레 사망했다. 훗날 세야누스가 몰락한 뒤, 그의 죽음이 세야누스의 전처의 폭로로 독살이었음이 밝혀졌으며 이는 그의 아내 리빌라와 세야누스의 공모였음이 드러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